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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마디

2012-07-31 13:48:58 | 희망블로거

학력/학벌차별 금지법의 필요성(1)

학벌이란 무엇인가

 

대선을 앞두고 주자들마다 ‘학벌 차별 철폐’를 내세우고 있다. 10년전만 하더라도 일부 시민사회나 재야 싱크탱크들만이 다뤘을 내용이 대놓고 나오니 기분이 퍽 이상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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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원장은 ‘대기업의 학벌 위주 채용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그의 생각을 밝혔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제주지역 대학생들과의 만남에서 학벌을 표기하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제를 내세우며 적어도 공기업에서 만큼은 관철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손학규 상임고문은 ‘서울대-지방거점 국립대 혁신네트워크 구축’을 주요 공약으로 발표했다. 정세균 상임고문은 이에서 더 나아가 아예 ‘학벌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는 주장을 밝혔다. 비교적 덜 알려진 경선후보인 조경태 민주통합당 의원은 ‘서울대 학부 폐지’와 ‘서울대의 연구대학화’를 제 1공약으로 내세울 정도다.

 

이들이 모두 주목하는 것처럼 한국 교육 문제의 본질은 단연 ‘학벌’이라는 독특한 구조다. SKY로 시작되어 인서울 대학지역으로 이어지는 학벌이라는 계급은 한국 공교육의 문제의 가장 근본인 동시에 가장 애매한 구조적 문제 중 하나다.

 

대다수의 한국 학생들은 더 높은 학벌을 획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실제로 학벌은 취업과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학벌이 어떻든 간에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제로 학벌이 낮아도 성공한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 비율은 극소수이며, 서울대생과 지방대생이 같은 출발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정말 학벌이라는 기준은 정당한가? 학벌에 대한 문제제기는 단순히 패배자(LOSER)들의 하소연일 뿐인가? 이에 대해 수많은 문제제기와 담론들이 나와 있지만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것은 사실상 부족하다. 


이는 단순히 사회과학적 접근이 미비하다거나 관련 담론을 다루는 학자들의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라 언론이 이것을 주류의 담론으로 대접해주지 않는데다가, ‘우리가 직접 체감하기’에 그들의 단어는 그럴 듯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상봉씨의 <학벌사회>와 강준만씨의 책을 아무리 읽어도 “그럼 넌 서울대 갈래, 지잡대 갈래”라는 정도의 물음에 금새 마음이 갈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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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이 글에서는 어떤 구체적인 수치와 깊은 담론보다는 ‘학벌’이 우리의 인식과 관련된 ‘제도적인 감성’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간략해 그 윤곽을 그려보도록 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학벌의 형성과정이나 고유의 원리를 밝히는 대신,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언어로 학벌이라는 제도적인 감성에 대해서 간략히 고찰해볼 것이다.

 

학벌 그리고 정형화된 시험

높은 학벌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간단하다. 수능과 내신 점수가 높으면 된다. 현재 대한민국의 대입제도는 수능-내신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뤄진다. 논술이라는 변수가 있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이 두 개의 커다란 틀 사이에서는 빈약한 정도다. 결국 학벌을 획득하는 사람은 수능과 내신이라는 ‘정형화된 시험’에서 강한 이들이다.

 

우리가 사회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인 학벌이 그냥 ‘정형화된 시험’일 뿐이라니. 다소 허무하다. 그렇다면 문제가 해결된 것인가? 그냥 학벌은 누가 말한대로 다양한 분야와 재능을 평가한 것이 아닌 ‘정형화된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기록한 것이니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라고 외치면 그만일까. 


하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뜯어보면 크게 이런 맥락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대가를 받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는 물음으로 이 정형화된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기록하는 사람이 똑똑하다는 믿음이다.

 

이 물음에 대해 정리해보자면 ‘중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중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노력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노출돼 있다’라는 구조주의적 입장에서 답변이 가능할 것 같다. 다시말해 교육은 환경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점부터 시작해야 한다. 


굳이 학벌이 세습된다는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어려서부터 교육의 중요성과 가치 그리고 독서와 학습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습득해온 전문직 부모의 자녀들과 퍽퍽한 생활 탓에 자녀들의 태도형성과 교육의 가치를 인식시켜주지 못한 노동자 계층의 자녀들과는 처음부터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 지속적으로 십 수년간 노출된다면 그 차이는 점점 심해진다. 실제로 유복하고 안정된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이 학습에 전념하게 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은 단순히 ‘고액과외=높은학벌’의 수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교육학에서 말하는 환경의 문제는 오히려 ‘내적 동기부여와 성취감’과 같은 요소에 집중한다. 좀 더 간편하게 정리하기 위해 부르디외의 논의를 가져와보자.

 

우리는 흔히 ‘자본’이라고 하면 ‘돈’만을 떠올리지만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는 자본을 크게 ‘경제자본’, ‘사회자본’, ‘문화자본’으로 구분했다. 경제자본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재정적 수입과 부를 의미한다. 문화자본은 ‘배계층이 전수하려고 하는 언어적이고 문화적인 능력, 문화적이고 사회적 선별에 사용되는 고급지위 문화의 선호로서 문화적 태도와 학력’을 의미한다. 사회자본은 문화자본과 함께 형성되는 사회적 관계, 인맥을 말한다.

 

쉽게 말해, 중고등학생의 삶에 비유하면 경제자본은 ‘고액과외를 할 수 있는 부모의 경제력’을 의미하고 문화자본은 ‘자연스럽게 교육의 가치를 터득하고, 높은 성적이 자신의 삶에 유리하게 돌아올 것임을 아는 태도, 따라서 자연스럽게 독서와 학습에 매진하는 취향과 생활상’을 의미한다.

 

이쯤되면 감이 잡힐 것이다. 학벌을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고액과외를 받았냐 안 받았냐 보다는 어려서부터 문화자본을 제대로 습득했느냐 못했느냐에 따라 갈리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유년시절 부터 형성된 아비투스(고착화된 습관, 체득된 습속)는 평생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즉, 단순히 열심히 한 이들이 높은 학벌을 획득됐다기 보다는 높은 학벌을 획득한 이들이 어려서부터 열심히 하기에 유리한 환경에 놓여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신명호가 쓴 <왜 잘 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하나>는 우리가 한 번 쯤 읽어볼만한 유의미한 결과물라고 할 수 있다. 사회계층간 학력자본(문화자본)의 격차와 양육관행에 따라 자녀의 학벌과 미래가 결정되는 것에 주목한 이 책은, 부르디외의 논의를 뛰어넘어 한국 사회에서 학벌이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는 지를 유의미하게 분석했다.

 

2010년 10월 31일 ‘한겨레’에 실린 정연주의 칼럼의 일부를 살펴보자. 그의 논의를 강화시키기 위해 이끌어 온 몇 가지 연구내용들이다.

#1. 1970~2003년 사이 입학한 서울대 사회대생 1만여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자료를 보면, 전문직·관리직으로 구성된 고소득 직군 자녀들의 입학률이 저소득 직군의 자녀보다 무려 16배(2003년)나 높았다.

#2. 2004~2010년 서울대 신입생의 아버지 직업 변천을 보면, 전문직·경영관리직의 아버지를 둔 신입생이 2004년에 전체 신입생의 60%를 차지했는데 2010년에는 64.8%로 늘어났다. 반면, 농축수산업·비숙련노동에 종사하는 아버지를 둔 신입생 비율은 2004년 3.3%에서 2010년 1.6%로 더욱 줄어들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시간이 지날수록 불가능해지고 있다.

#3. 한 달에 사교육비로 평균 50만원을 지출하는 고등학생이 내신성적 3등급 이상에 속할 확률은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을 경우보다 2배 이상 높다.(김민성 성균관대 교수 ‘고등학교 내신성적에 대한 사교육비 지출의 효과’)

#4.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아이들의 꿈인 장래희망도 큰 차이가 있었다. 부모 소득이 높고 특목고에 다니는 학생일수록 고소득 전문직을 희망하는 반면, 부모의 소득이 낮고 특성화고(옛 전문계고) 학생일수록 저소득층 직업군을 희망했다. 가난이 꿈마저 가난하게 만들었다.(올해 10월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조사)

 

혹자는 이렇게 반문한다. 환경 탓 하지말고 본인이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매년 신문에 가난한 집안의 출신으로 서울대에 합격한 소년 혹은 소녀의 수기는 본 적이 없냐고. 오히려 그 보도가 반증의 증거다. 이런 기사의 특징은 ‘토픽기사’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외국의 괴기한 사람, 혹은 비정상적이고 놀라운 사건들을 보도하는 토픽 기사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이것이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한다. 즉, 어떤 확률의 개념으로 접근할 수 가 없는 비일반적인 사례인 셈이다. 실제로 한 해 수십만명의 수능 수험생들 중 이러한 성과를 보여주는 이들은 한 두 명이 채 안된다. 확률로는 0.001%도 안된다. 어떤 일반적인 원리로 해석될 수 없는 사실이다. 때문에 일 년에 한 두 번 신문에 등장하는 ‘가난한 시골소녀의 서울대행’은 일반 학생들에게는 유의미하다고 볼 수 없다.

 

한국사회가 ‘정형화된 시험’으로만 사람을 평가한다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높은 학벌을 지녔다는 것은, 높은 수능점수를 얻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동시에 이것은 ‘정형화된 시험에 강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정형화된 시험은 수능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의 출세를 판가름하는 ‘고시’는 대표적인 정형화된 시험이며, 심지어 일반 기업에 입사할 때 사용되는 ‘스펙’도 여전히 정형화된 시험의 연장선이다. 이렇듯, ‘정형화된 시험’이 사람을 평가하고 선택할 때 가장 일반적인 기준인 한국에서 ‘정형화된 시험에 강한’ 이들이 대학 졸업 이후에도 승승장구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왜 학벌을 거부하지 못하는가

그나저나 우리는 왜 이렇게 학벌에 집착할까? 분명 학벌 따로 돈 많이 버는 사람이 있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학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도 그럴 듯 하고, 학벌이 단지 중고등학교 시절 정형화된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한 것뿐이라고 해도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은 불쾌하다. 도저히 이것을 인정할 수 없다. 무엇이 우리 마음속에서 이것을 인정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일까?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어려서부터 습득된 공교육 환경에서 습득된 가치이고, 다른 하나는 미디어의 역할이다. 우리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과외를 받든 안 받든, 부자집이든 아니든 대부분의 부모와 교사는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이것이 가장 큰 미덕이며 학교생활에서 요구되는 궁극의 목표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 공교육에서 정언명령이자 미덕인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은 다시 말해 정형화된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는 말이다.

 

이것의 함의는 고학년이 될수록 구체화된다. 이 정형화된 시험의 목적이 바로 SKY에 진학하는 것임을 가족, 교사, 학교는 물론 학생 본인조차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요청하게 된다. 쉽게 말해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학교 생활의 절대적 목적’이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해 인성교육이니 사회성 함양이니 하는 말을 누가 믿겠나, 굳이 부정주의자가 되지 않더라도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중고등학교 생활의 절대적 목표임은 모두가 공감한다.

 

때문에 이런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학벌은 절대적이고 명확한 기준’이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잡게 된다. 말로 부드럽게 표현해 ‘마음속에 자리잡게 된다’는 말이지 사실상 그 사람의 가치판단의 절대적 기준이 된다. ‘학벌을 절대화하는 아비투스’가 형성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지속적으로 이런 환경에서 자랐는데 그 누가 그 가치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당연하다.

 

어려서부터 형성된 아비투스는 추후에 한 순간 부정한다고 해서 쉽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그것이 어떤 외적 습관이나 태도가 아니라 마음속의 하나의 굳은 가치관이나 고정된 관념이 된다면 더더욱 수정이 어렵다. 결국, 우리는 ‘학벌이 전부가 아니야’라고 말하면서도 “그 친구 연세대 나왔다”라고 하면 눈이 확 트이고 사람이 달리 보이게 된다.

 

또 하나의 미디어의 역할이다. 비단 신문과 뉴스, 수많은 출판물들은 은연중에 학벌이 절대적인 가치임을 제시한다. 뉴스뿐만 아니라 공중파의 많은 프로그램에서는 ‘학벌’이라는 기표를 은연중에 강화한다. 개그콘서트에서도 모 여성개그맨을 소개하면서 “쟤 고려대 나온 여자야”라고 외치는 노릇이다. 어떤 연예인이 명문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두고두고 화제가 된다.

 

책은 어떤가, 이미 커질대로 커진 사교육 시장은 학벌이라는 기표를 내려놓지 못하게 만든다. 끊임없이 문제지들을 생산해내며, 공부법 도서, 명문대 진학하는 법, 성공학 도서에서 명문대의 진학하는 방법을 강조한다. 수 많은 과외 강사들, 학원 강사들 역시 먹고살기 위해 혹은 학생들의 학습 동기를 자극하기 위해 학벌이라는 기표를 더 강화시킨다.

 

평소 한국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지적하는 진보언론들 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사교육광고를 대문짝만 하게 싣고, 공부 잘하는 방법, 명문대에 진학하는 방법(물론 이 단어를 노골적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을 특별세션으로 다룰 정도로 기존 사회의 인식과 다르지 않다. 평소 학벌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 온 김상봉 교수가 <학벌사회>를 통해 한 발언은 이 지점에서 유의미하다.

 

“우리사회에서 서울대는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자본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최고의 지배학벌이다. 그러나 서울대의 지배권은 이처럼 눈에 보이는 사회적 자본을 지배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문화와 정신의 영역에까지 미친다. 대중의 의식을 보이지 않게 통제하는 언론의 경우에도 서울대는 확고한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어서 그들의 계급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서울대 신화와 일류대 신화를 노골적으로 확대 재생산한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공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강화된 학벌이라는 기표, 또 그것을 절대적으로 여기는 정서는 학생들의 가슴속에 깊게 박혀 거부할 수 없는 ‘아비투스’가 된다.

 

 

학벌, 이상주의자들이 쌓은 탑

명문대생이 타 대학 학생들에 비해 가지고 있는 강점은 단순히 취업이나 사회생활 내에서의 유리함뿐만은 아니다. 궁극적인 면은 오히려 ‘심리적인 면’에 있다. 언론인 손석춘이 “한국 대학생들은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공부를 하지 않는다. 명문대생도 그렇고 비명문대생도 그렇다.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신분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조금 단정적인 면도 있지만 분명 유의미하다. 높은 학벌을 획득한 이는 단순히 과외에서 더 높은 수당을 받는 것을 뛰어넘어서 주변으로부터의 인정, 사회적 대우와 같은 심리적 플러스 요인을 얻게 된다. 매일매일 이 일이 반복되다 보면 비명문대생에 비해 훨씬 유리한 심리적 동인을 지니게 된다. 당연히 출발점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한 해 명문대라고 불리는 대학에 입학하는 이는 전체 고등학생의 1%도 안된다. 나머지 99%는 결국 끊임없이 심리적으로 마이너스 요인 속에서 페널티를 짊어진 채 지내는 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막대한 손해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영화 <여고괴담>에서 등장하는 “나중에 라면장사를 하더라도 서울대를 나온 사람은 특별대접을 받는다”는 대사는 상황을 잘 꿰뚫은 문장이다. 이런 대우가 매일매일 반복되다 보면 명문대생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늘 ‘가산점’을 받는 꼴이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최현은 “학벌이 명품 백과 같다”고 말했다. 내 이성친구가 이왕이면 명문대생이었으면 하는 바람은 사실 어떤 실력이나 지혜로움을 원하기 보다는 좀 더 ‘간지’가 나기 때문이다. 학벌의 문화자본적인 속성을 잘 고찰한 표현이다. 이처럼 ‘정형화된 시험’에서 시작해 ‘문화자본’, ‘심리적으로 엄청난 플러스 요인’ 모두 학벌이라는 ‘기표’를 설명하는데 유의미한 단어들이다.

 

학벌문제 해결을 위해 대학평준화, 국공립대 네트워크와 같은 대안들이 등장했다. 실제로 국공립대 네트워크 같은 경우 실제 제도권정당의 주요 대선 정책으로 물망에 오르면서 현실적 도입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 개선과 동시에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사회구성원들의 ‘정서’다. 특히 그 정서가 제도적인 감성이라는 점에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또 다른 구조적 문제인 셈이다.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해야할 일은 세련되게 구체적인 언어로 ‘왜 학벌이 절대적인 기표가 아닌지’, ‘그것이 왜 궁극적인 평가 기준이 될 수 없는지’를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일이다.

 

<국민이 설계하는 대학운동>의 시안 자료집을 보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한국 대학의 질적 수준 분석 연구’의 자료를 보면 전체적인 학습성에 오히려 지방대학의 학생들이 수도권 지역의 학생들의 능력을 앞지르고 있는 것이다. 분석적 사고력은 수도권이 2.85, 지방이 2.88를 기록했고 문제해결 능력에서는 수도권이 2.83, 지방이 2.89를 기록했다. 팀원으로 활동하는 능력 역시 수도권 2.97, 지방 3.04로 지방대학의 학생들이 수도권 학생들에 비해 우수한 능력을 보여줬다.

 

막상 벗겨놓고 보면 우리가 강하게 믿고 있고, 강화시키고 있는 학벌이라는 기표는 사실관계힘을 잃는다. 여전히 누군가는 “그래도 서울대 나온 애랑 대학을 다니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문제아랑 비교가 되느냐?”고 묻겠지만 이것은 ‘학벌’과 ‘학력’의 문제를 구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구조주의적인 시각을 배제한 결과론적인 관점이라는 점에서 호소력이 약하다. 모두가 구조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개인’은 ‘환경(구조)’에서 파생된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현실적이다. 이 구조의 결함을 해결하기 위해 이런 구체적이고 파괴력 있는 언어가 지속적으로 등장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젠 그만 기표의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올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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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runkenSJ | 9개월전

    RT @noworry21: 학력/학벌차별 금지법의 필요성 (1) 학벌이란 무엇인가 by 우리사회에서 바로잡아야 할 이슈! @noworry21 @wikitree http://t.co/dLrf5Q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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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ksmiIe19 | 9개월전

    직접 쓴 글 맞죠?? ^^;;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어요 ^^ RT @yangpiji: 학력/학벌차별 금지법의 필요성 (1) 학벌이란 무엇인가 by @peoplechangeU @wikitree http://t.co/beOUhH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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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do20 | 9개월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학력/학벌차별 금지법의 필요성 (1) 학벌이란 무엇인가" by @peoplechangeU @wikitree http://t.co/940wBr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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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lgeoni | 9개월전

    RT @noworry21: 학력/학벌차별 금지법의 필요성 (1) 학벌이란 무엇인가 by 우리사회에서 바로잡아야 할 이슈! @noworry21 @wikitree http://t.co/Yj6Tlkx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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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worry21 | 9개월전

    학력/학벌차별 금지법의 필요성 (1) 학벌이란 무엇인가 by 우리사회에서 바로잡아야 할 이슈! @noworry21 @wikitree http://t.co/dLrf5Q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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